랄라~
한 손엔 빈 도시락통 주머니. 또 한 손엔 우산.
평화롭고 차분한 비 길 풍경과 비 소리를 감상하며 느릿느릿 걸어서 퇴근하던 중
길 옆 작은 화단에서 들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려 가만히 살펴보니
흙인지 새인지 구별할 수 없는 칙칙한 색깔의 아기 새가(못생겨서 실망)
비를 맞으며 처량하고 꽤재재한 모습으로 짹짹거리고 있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총 4마리....
원래도 싫지만 자연생태 다큐의 해오라기 편을 보고나서는 쇼크.. 트라우마인 조류!
징그럽고 혐오스럽고 통닭냄새에 새x도 싫고 바이러스도 싫고 아무튼 싫다!
하지만....
걔네들을 두고 자리를 뜨지 못하여 우산을 씌워 주며
어떻게 해야할지 갈등하고 있던 차에
연령추정이 미묘한 헤어스타일을 한 여자가 불쑥 나타났다
"어쩌지?"를 연발하시는 그 하이톤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어쩐지 괜히 더 혼란스럽기만 했고 당시 상황에 별도움이 되지않는 듯 했다.
왠지 이대로는 안돼겠다 싶어
(더이상의 진척은 없이 그대로 끝이 날 듯한 판단에서)
피로티형 빌라의 개방된 옆 주차장 안으로
얼른 아기새를 조심스레 대피시켰다.
그녀도 일단 나를 따라 새들을 주차장으로 옮겼다.
손을 뻗어 잡는데 처음에는 조금 버둥거리더니 이내 작은 몸통이 한 손에 쏙 들어왔다.
비를 맞아 행색은 초라한데다 괴상 아니, 괴숭망측한 냄새도 났지만
까맣고 쪼끄만 그것이 나를 가만히 쳐다보는 모양은 어쩐지 귀여웠다.
그리고 내 손보다 약간 높은 새들의 체온이 느껴졌을 땐 이런 게 생명감인가?
하는 조심스럽고 소중한 기분이 들었고
아무튼 얘들이 비를 잘 피했으면 좋겠다는 안스러움이 스쳤다.
근데 얘네들한테 났던 냄새는..같은 조류라서 그런가
집 청소도구로 사용하던 타조털 총채를 물로 세척한 후 드라이기로 말렸을 때 나던
초특급 역겨운 와 비슷한 아무튼 정말 끔찍한 냄새가 났다.
그리고 추울까봐 근처 쓰레기 봉투 안에 좀 깨끗해 보이는 과자상자 박스를 찾아
그 안에 넣어줬는데 자꾸 바둥거리며 뛰쳐 나왔다.
비를 제일 많이 맞은 듯한 녀석은 기운이 없는지
상자 안에 가만히 자리 잡고 서있고 나머지는 뛰쳐 반복했지만 아직 뭔가가 미진한 그녀와 나는..
주차장에서 여전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뭐에 놀란듯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엄마 새가 보여요~!
(응..?)
등 뒤를 돌아보니,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 불안하고 몸짓으로
이리저리 낮게 푸드덕대는 새 한마리가 보였다
아마도 사람인 우리를 경계하며 한 동안 멀찍이서 지켜본 듯 하고
아까 그 시끄러웠던 소리는 엄마를 부르는 소리였던 것 같았다
엄마 새야~~~ 너 그동안 어디 있었어~~
이제 안심이야~~~와서 좀 데려가~~~ㅠ,,ㅜ
하지만..
엄마새도 방법은 없는 듯 했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 새가 있는 근처의 비가 덜 들이치는 곳으로 아기새들을 옮겨 놓고
어느정도 안심이 되어서는 한 동안 그 자리를 지켜보다가 새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함께한 그분과 어색한 짧은 만남을 마쳤다.
근데 ....
집에 돌아온 나는 책상에 앉아 문득 그 이일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던 중
내가 뭔가 착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직 눈 앞에 새들만 쳐다보느라 어미새는 못보고 있었던 나에 반해
그 주변도 바라봐준 그녀.
마음 속으로 뭔가 해냈다고 스스로 생색을 낸 내가 참 민망하고 반성이 된다.
이제서야 그녀에게 고마움이 생기다니.. 고맙다는 인사라도 할 걸...
아쉬움도 좀 남는다.
얘들아 너희들 지금 엄마랑 잘 있니?
그래도 오늘 나 착한 일 좀 했는데 이 담에 박씨라도 물어오련?? ㅋ
너희들 모습을 보아하니 제비 자손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새니???
그래도 좀 물어와~~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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