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grand blue]

강산에 물수건

윈터원더랜드 2009. 3. 7. 18:39
강산에 "인생 방정식에 정답은 없다"
 




6년 만에 낸 8집 타이틀 곡명은 '답'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뭐라그러노" "그럼 니는…"
부산이 고향인 강산에(본명 강영걸ㆍ45)에겐 고향 사투리가 남아있었다. 30초당 두세 문장을 말하는 느릿한 말투 속에, 때론 말문이 막히면 "뭐라그러노"라며 또 한 템포를 쉬었다. 질문의 답에서 한참 멀어졌다가 차근차근 다시 돌아오는 여유에는 어눌함이 묻어났다.
비릿한 흙냄새 나는 작은 마당에 장독 묻고 살 사람 같다는 말에 "전원생활이 꿈"이라며 "나무도 많고 마당도 있고. 없는 사람이 시골 산다지만 요즘은 있어야 산다"며 털털한 웃음을 짓는다. 아마도 '라구요' '명태' '와그라노' '할아버지와 수박' '예럴랄라' 같은 정감 어린 곡들로 존재를 붓 터치한 덕택이리라.
6년 만에 낸 8집에서도 일상의 소소함을 끄집어낸 방식은 변함이 없다. 8집 제목이 '물수건'인 것도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때 찾은 일본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이 지금에서야 발현된 덕택이다.
"아내(일본인 다카하시 미에코ㆍ43)를 만나 (일본에) 가게 됐죠. 다른 문화권을 접한 순간인데 비행기를 타는 때부터 감동이었어요. 약 20년 전이니까 그때 우리는 음식점에 물수건 문화가 없었죠. 일본 음식점에서 쟁반에 나오는 오시보리(물수건)를 받아들고 '아! 내가 대접받고 있구나'란 걸 느꼈죠. '참 좋다~' 생각했어요."
마음 속 깊이 메모해 둔 '오시보리'를 어느 날 문득 노트에 적었고, 은근히 삭힌 끝에 세상에 내놓은 것. 강산에는 팬들에게 정성스레 준비한 물수건을 내놓는 마음으로 음반을 마련한 셈이다.
평범한 세상살이 가운데 소재를 콕 집어 음반에 담아내는 그의 관찰 카메라는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저도 많이 지나쳐요. 결과적으로 노래로 만든 것은 그나마 제 마음에 걸린 것들이죠. 아내, 친구, 후배를 보면서 놓치는 게 태반이라는 걸 상대적으로 알게 되요. 평상시 매일 흘리고 있다가 한두 개 걸린 것들을 붙잡고 음악합니다. 하하."
사실 공백기 6년 사이, 놀았던 건 아니다. 그사이 일본 음반제작사의 요청으로 음반 발매를 준비하던 중 담당 회사가 부도를 내 이른바 '엎어지는' 경험을 했다. 1992년 가수로 데뷔하고 1994년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다시 일본을 찾았을 때 음악인의 조건들, 시스템을 보면서 언젠가 그곳에서 음반을 발표하고 싶은 꿈을 꿨는데 아쉽다. 그래서 그 꿈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당시 국내 히트곡을 일본어로 개사해 부를 생각은 없었고 일본어로 부른다면 새로 쓴 곡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침의 사과' '내 여자' 등 일본어 곡을 4~5곡 썼는데 결국 8집에서 빛을 보게 됐다.
그런데 우리말을 전혀 모르는 그의 외국인 친구들이 삐뚤 빼뚤 가사를 써놓은 8집 재킷을 보다 보니 일본어 곡이 눈에 띈다. '사스가 카스가(역시 하찌)'로 그룹 하찌와TJ의 멤버 하찌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았다.
"제가 음악하고 있지 않던 1987년, 하찌 주변인의 주변인으로 알게 됐어요. 그 사람은 한국의 사물놀이에 반해 꽹과리를 배우러 왔다가 한국서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죠. 나중에서야 서로 음악 하는 사람인 걸 알았고 음악적인 인연은 3집부터 시작됐어요."
더욱 끈끈한 인연으로는 동반자인 아내가 있다. 2집 때부터 작사에 참여한 아내는 이번에도 타이틀곡 '답'과 '눈물 핑' '낮잠' 등 네 곡에 노랫말을 선물했다.
"'넌 할 수 있어'는 아내가 가사를 일본어로 쓴 다음 한국어로 개사한 겁니다. 아내는 하우스 키퍼(Housekeeper)죠. 살림하면서 옆에서 저를 보조해줘요. 항상 저를 디렉팅 해왔습니다. 하하."
아내의 손을 탄 노래 '답'은 우리에게 복잡한 정답만을 요구하는 틀에 박힌 고루한 세상에 대한 바람이 담겼다. 그는 꿈꾸는 세상에 대해 얘기하며 '관계'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근본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각자 행복했으면 좋겠고,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고. 우린 관계를 이루고 있죠. 관계라는 게 사이가 좋을 때 행복해지죠. 그게 방정식처럼 딱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각자의 답이 있지 않을까요? 전 다름을 이해하며 배려하는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이해하면 차별도 안 하게 되고요."
풋풋하게 겉저리한 그의 음악과 달리, 요즘 쏟아지는 '콘셉트 형' 음악이 사랑받는데 대한 아쉬움도 있으리라.
"예전에는 남의 것에 대한 불만이 많았어요. 문득 '그래봤자, 그럼 니는'이란 생각이 들었죠. 각자 자기만의 답과 가치관을 찾아가는 겁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살고 있고 어떤 음악이든 다르게 감동을 줄 수 있어요. 저 역시 편견을 갖고 있었던 부분이 어느 순간 깨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으니까요."
그는 "공식대로 라면 2곱 하기 1은 2"라며 "무조건 시간을 많이 들일 경우 음반이 좋고, 많이 팔린다는 공식이 있다면 시간을 무한정 들이겠다. (좋은 반응을 얻은) 4집은 한 달 만에 만들었다. 짧게 생각해본 세상은 공식적인 것이 아니더라"는 가요계를 통해 체득한 교훈도 덧붙인다.
자신을 '굉장히 관념적인 이상만 좇는 사람'이라고 평한 강산에는 예전에는 볼 수 없던 것, 느끼지 못한 건, 간과한 것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돌아보니 관계하고 있던 모든 사람, 사물이 감사하더란다.

강산에는 8집 발매를 기념해 4월2~20일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 상상마당 라이브 홀에서 콘서트를 개최한다. 이번 공연에는 윤도현, 김C, 강채이, 하찌와 TJ, 이상은 등이 지원군으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관람료 3만5천 원, ☎ 1544-1555

 

 

 

 

 

 

 

 

20년 음악 친구인 강산에<左>와 하찌가 서울 홍익대 인근 단골 주점에서 막걸리 잔을 부딪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벽을 뛰어넘는 그들의 음악얘기는 텁텁한 막걸리 이상으로 진득했다. [사진=강정현 기자]

‘라구요’ ‘넌 할 수 있어’의 묵직한 가수 강산에(45)가 6년 만의 새 앨범 ‘물수건’을 발표했다. 데뷔 전인 1980년대 말 일본 생활에서 인상 깊었던 ‘오시보리(식당에서 내주는 물수건)’에서 영감을 따와 앨범 타이틀을 만들었다.

강산에는 “여름에는 차갑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데워서 내놓는 물수건처럼, 사람들에게 노래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제목이 ‘수상한’ 노래가 눈에 띈다. 9번째 트랙 ‘사스가 카스가’다. ‘사스가’는 ‘과연’이라는 뜻의 일본어. 그렇다면 이 노래 가사 중에 ‘후츠우쟈 나이요’(보통이 아니네)라고 표현된 ‘카스가’는 누굴까.

강산에 경희대 한의예과를 중퇴하고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93년 1집 ‘라구요’ 로 유명해졌다. ‘넌 할 수 있어’ ‘연어’ 등으로 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로 낙담했던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이달 초 8집 앨범 ‘물수건’을 발표하며 라이브 공연에 주력하고 있다.

하찌 본명은 가스가 히로후미. 일본의 유명밴드 ‘칼멘 마키 앤 오즈’의 기타리스트 출신이다. 꽹과리 소리를 우연히 접하고 국악을 배우기로 결심, 87년 한국에 왔다. 2년 전 조태준과 함께 ‘하찌와 TJ’를 결성, ‘장사하자’ ‘남쪽 끝섬’ 등의 히트곡을 냈다.


앨범 속지 뒷장의 스태프 명단을 보니 의문이 풀렸다. 카스가는 이번 앨범에 편곡, 프로듀서, 세션으로 참가한 일본인 뮤지션 하찌(본명 가스가 히로후미·54)다. 강산에와 하찌의 인연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산에의 일본인 아내 다카하시 미에코의 주선으로 서로 얼굴을 알게 됐다. 이후 하찌는 강산에의 3집 앨범 ‘삐따기’(96년)에 참여하며 강산에와 ‘음악적 형제’가 됐다. 97년에는 함께 ‘예비군’이라는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봄 햇살이 따사롭던 21일 늦은 오후, 이들이 서울 홍대 인근 단골 술집에서 막걸리 잔을 부딪쳤다. 강산에가 “하찌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된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자신의 음악에 하찌의 영향이 깊게 뿌리 박혀 있다는 것이다.

“‘하찌가 훌륭한 음악인이다’라는 뜻이 60%, 그리고 ‘참 괴짜다’라는 뜻이 40% 노래에 담겨있어요. 일본의 유명 밴드 ‘칼멘 마키 앤 오즈’의 기타리스트였던 그가 꽹과리에 빠져 무작정 한국에 왔으니, 정상이 아니잖아요. 90년대 초 일본에서 만났더니, 건설현장 인부로 일하고 있더군요. 정말 제 멋대로 사는 인생이에요.” (웃음)

87년 처음 한국에 온 하찌는 강산에·전인권 등의 앨범을 프로듀싱했고, 2년 전에는 조태준이라는 무명가수와 함께 ‘하찌와 TJ’를 결성했다. ‘장사하자’ ‘남쪽 끝 섬’이 대표곡이다.

“하찌는 내 음악적 조련사예요. 하찌 덕분에 민속음악이나 월드뮤직에 귀가 열렸습니다. 우리 가락을 어느 한국 사람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하찌예요. 그가 일렉트로닉 기타로 우리 가락을 흥겹게 연주하는 걸 보고 감탄했어요. 해금 연주가 섞인 ‘깨어나’ ‘원(One)’, 테크노를 접목한 ‘쾌지나 칭칭나네’ 등은 하찌가 영감을 주지 않았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하찌가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켰다. 강산에의 칭찬이 쑥스러운 모양이다. “하하하, 나는 그냥 놀고 싶을 뿐이에요. 꽹과리를 치면 기분이 좋아져요. 한국에서는 꽹과리·장구를 수준 낮게 보는데, 대단한 악기예요. 꽹과리·장구를 양악과 섞어서 연주하고 싶어요. ‘재떨이 같이 생긴 악기(꽹과리)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날까’라는 궁금증이 내 음악 인생을 바꿔놓았죠.”

하찌 또한 강산에로부터 큰 자극을 받았다. “강산에의 음악적 지평이 넓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나도 내 음악을 해야겠다’고 결심해 ‘하찌와 TJ’를 만들었다”고 했다.

오래 사귄 친구가 취향이 비슷해지듯 이들의 음악도 서로 닮아간다. 강산에의 신곡 ‘낮잠’은 ‘하찌와 TJ’의 곡 ‘어느 오후’(2006년)의 후속곡 같다. 편안한 멜로디와 낙천적인 가사가 무척 닮았다.

“어떤 꿈을 꿨는데 아무 생각이 안나/그렇지만 왠지 웃고 있었던 것 같아/너도 본 거 같고 나도 본 거 같네/ 어쨌든 이대로 좋은 기분.” (‘어느 오후’)

“꾸벅꾸벅이 꿈을 낳고/꿈이 기쁘다를 낳고/기쁘다가 낳은 싱글벙글이/당신을 부르고….” (‘낮잠’)

‘하찌와 TJ’의 ‘장사하자’도 강산에 1집 앨범(93년)의 ‘돈’과 맥이 닿아있다. ‘돈 벌자’ ‘장사하자’는 가사를 통해 역설적으로 ‘세상에 돈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돈’이 황금 만능주의를 조장한다고 당시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어요. ‘태극기’라는 노래에서는 대통령을 조롱했는데, 마치 내가 대단한 애국자처럼 인식됐었죠. 정말 모를 세상이에요.” (강산에)

“강산에의 신곡 ‘이구아나’도 방송사 재심의를 받고 있잖아요. ‘2X7=14, 2X8=16 이구아나~’하는 대목이 귀에 거슬렸나 봐요. 2X9=18(욕설로 들릴 수 있는 숫자)을 이구아나로 바꾼 것 아니냐는 거죠. 하여간 강산에는 심의 요주의 대상이야. 하하하.” (하찌)

빈 막걸리 병이 늘어갔다. 대화도 더욱 깊어졌다.

“산에! 내가 잘나갈 때는 ‘나는 선택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늘 우쭐댔었는데 그게 잘못된 생각이란 걸 나중에야 깨달았지.” (하찌)

“나도 그랬어요. 세상을 거저 먹으려 했었죠. 90년대 후반 어려운 시대와 맞물려 ‘넌 할 수 있어’가 대박을 쳤죠. 스타가 되니까 어려웠던 시절은 잊어버렸어요. 쉬고 싶다는 생각, 사회에 대한 불만이 가득해져 술이나 마시고, 불미스러운 사건(음주운전)에 휘말리게 되고….”(강산에)

강산에는 하찌를 ‘생활의 달인’으로 표현했다. 주변의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하찌의 라이프 스타일에서 음악적 영감 못지 않은 삶의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하찌는 오후의 홍차 한 잔이 주는 행복감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 같아요. 난 그런 행복을 모르고 다른 세계에 가 있었죠. 거창한 메시지를 생각하며, 관념적으로만 달려가려 했어요. 그런 게 노래에도 묻어났었죠.”(강산에)

“살아있는 자체가 기적인데, 사람들은 그걸 몰라요. 삶의 재미를 못 느끼고, 감수성도 마비된 것 같고…. 나른한 오후 차 한 잔 마시는 여유와 행복감으로 창 밖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가사를 쓰려고 노력해요.” (하찌)

강산에의 새 앨범에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랑, 일상에서 느끼는 기쁨이 가득 담겨 있다. ‘아침의 사과’ ‘내 여자’ ‘꼭 껴안고’ ‘손’ 등 제목 그대로, 개인적이고 솔직한 내용의 가사가 인상적이다. “우주에 붕 떠있던 내가 주변 사람과 사물에 눈을 돌렸다고 할까요? ‘지금 바로 여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거죠. 4집 앨범에 ‘내 마음의 구멍’이란 곡이 있는데,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면, 마음에 그런 구멍이 생기는 겁니다.”

이들은 자신에게 따라 붙는 ‘자유로운 기인’이라는 수식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자유롭게 노래하지만, 정작 노래의 노예가 되는 것은 싫어하는 이들이다.

“하찌는 기인이고 자유인이지만, 나는 아니에요. 하찌말고 이외수·전유성씨도 기인이죠. 나는 그런 기인들이 좋아하는 가수일 뿐입니다.” (강산에)

“한대수씨가 얼마 전 환갑 잔치에서 그러더군요. ‘여기 모인 사람 중에 하찌가 가장 괴상해’라고. 본인은 아니라지만, 강산에도 만만치 않아요. 캘리포니아 사막에서 용변을 한 경험을 노래(‘사막에서 똥’)로 만드는 게 보통 일인가요. 먹는 사과에서 시작해 똥으로 마무리 짓는 앨범 아무나 못 만들어요. 하하하.” (하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