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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론 2010.10.28 17:09
성균관 스캔들 18화 마지막 장면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마음을 추스리고 본편에 대한 글을 올리려 한다.
다행히 걸오의 목숨이 무사하다는 낭보에 일단 안심은 된다.
18화에서는 주인공들이 금등지사의 행방에 접근해 감과 동시에
10년 전 사건의 배후를 알아내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그 와중에 펼쳐지는 갈등과 긴박함, 절망과 안타까움,
그리고 몰랐던 과거의 회한과 오해의 해소, 또한
금등지사 찾는 것을 결사적으로 막으려는 병판과 하인수의
치졸하고도 위험한 방식의 상황 전개가 주를 이루었다.
누군가는 희생되고야 말 것 같은 슬픈 예감이 강하게 드는 가운데,
사태는 긴장감이 최고조에 올랐다.
여림이 노름판 퇴기에게서 확보한 한성부 윤참군의 땅문서에 적힌 이름이 누군지만 알면 배후를 찾겠다 하는데
걸오가 여림에게 배후 찾는 일을 접자 하고 금등지사를 막으려는 사건의 배후엔 노론의 영수인 좌상 대감이 있다하자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된 대물과 가랑은 일대 감정의 혼란이 오게 되었다.
선준은 좌상대감이 배후인지 여부를 알 수 있는 가장 적임자는 자신이 아니겠냐며 아버지에게 확인하겠다 한다.
가장 그 사실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던 두 사람이 알게 됨으로써 재신은 착잡한 마음에 무거운 침묵만 지키고,
사태 파악을 한 용하는 그래서 대물 맘 상할까봐 배후 찾는 걸 접자 했느냐며,
눈치 백단 구용하도 미처 알지 못했던 대물과 가랑의 사이가 가까워짐을 눈치챈 걸오의 마음씀을 헤아린다.
문서에 있는 이름은 선준 집안의 집사 일을 보던 자라, 선준은 그 아버지 좌상 대감에게 진실을 알려달라 한다.
이에 좌상은 금등지사는 세상에 필요 없는 물건이라, 사사로운 혈육의 정리보다는 종묘와 사직이 정도라 믿으며,
추구하는 정도가 다르면 부자지간에도 정적이 될 수 있는 법이므로 사도세자의 죽음은 패자의 결말일 뿐이라 답한다.
금등지사가 아니라 천륜에 마음이 흔들려 나라의 기반이 위기에 처할 그릇된 판단과 실수를 두려워 함이라 하며
한 때의 낭만적 이상에 휩싸여 멸문지화를 당하기 전에 더 이상 금등지사를 찾지 말라 이르지만,
선준은 그렇다면 진성 이문의 번영을 위해 박사 김승헌과 장의 문영신을 희생시키고 금등지사를 없앤 것이냐 물으며
그동안 보며 자라온 아버지에 대해 더 이상의 신뢰를 기대할 수 없다는 강한 실망감을 표하여
지난 번 시전 행수의 뇌물 수수 장부를 제출했던 때 보다 몇 배는 더한 결의로, 게다가 직접 아버지와 대면하는 자리에서
아버지와 정적이 되겠다는 선언을 해 버리고 만다. 감히 아비에게 등을 돌리냐며 진노하는 좌상 대감에게
선준 또한 신념을 절대로 굽힐 뜻이 없음을, 아버지의 행위가 정당하거나 정의롭다고 여기지 않음을,
심지어 가문을 지키기 위한 변명과 궤변으로까지 여기고 있음을, 차갑게 가라 앉은 대쪽같은 성품으로 보여주었다.
감정의 혼란 속에서 특히 윤희는, 방금 전까지 반지도 받고 입맞춤도 하던 연모하는 사람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와 재신의 형님을 돌아가시게 했다는 믿고 싶지 않은 사실에 당혹감을 감추질 못한다.
당황한 것은 것은 선준도 마찬가지, 그 동안 믿고 존경하던 아버지가 정의롭지 못한 일을 저질렀다는
그 충격과 배신감과, 무엇보다도 윤희와 재신에 대한 죄책감이 이루 말 할 수 없음이다.
주체 못할 혼란 스러움에 윤희는 선준에게 마음을 진정할 시간을 좀 달라 한다.
어머니로부터 사실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동생으로부터 아버지의 진심을 듣고,
스승으로부터 아버지의 참 뜻을 전해들은 윤희는 더욱 금등지사를 찾기 위한 아버지의 암호 해독에 매진한다.
동생만 예뻐한다고 생각했던 어린 날의 철 없음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에,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딸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목숨을 내놓는 것도 아깝지 않으셨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다.
선준으로부터 받은 반지도 끼지 않고 마음을 다잡으며, 금등지사의 위치로 짐작되는 곳을 샅샅이 찾지만 여의치가 않다.
선준은 선준 나름대로, 진실을 파헤치고자 한성부 참군을 여기저기 수소문하러 다니고,
답지 않게 이성을 잃은 폭력과 감정적인 처사로 용하와 재신과 윤희의 걱정을 산다.
선준은 윤희를 안고 윤희에게 그리고 재신에게 사죄를 하고 싶었다며, 윤희가 빼앗긴 모든 것을 자기가 누리고 있었다며
씻을 수 없는 아비의 과오를 갚을 길 없는 자신을 깊이 한탄한다.
좌상과 병판을 협박하여 돈을 뜯어낸 비열함의 정수를 소름끼치게 보여주는 윤참군은 한양을 떠날 준비를 하는데,
좌상으로부터의 혼담 거절로 반감을 품고 윤참군도 못마땅하게 여기게 된 병판은 초선을 시켜 윤참군을 제거하려 하나
마침 행장을 발견한 선준과 재신에 의해 암살이 저지당하고 재신은 초선의 정체를 확인하게 되며,
윤참군의 입으로부터 좌상의 뜻과 상관 없이 김승헌과 문영신을 살해하라 명한 것은 병판이고
그 입막음조로 나중에 좌상에게서 받은 것이 그 땅문서라는 사실을 듣는다.
둘의 희생이 아버지의 뜻과 달랐다는 얘기를 듣고 안도가 되는 선준과,
그 사실을 대물에게 알려야 하지 않겠냐는 속 깊은 걸오 사형의 말은 또 다른 엇갈린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한 편, 장의 하인수는 어쩐 일인지 여림을 표적으로 삼고 낌새를 잡으려 눈독을 들이나
아직은 노련함으로는 한 수 위인 여림이 하인수를 가지고 노는 형국이지만 왠지 불안한 기색이 감돌고,
윤희는 성균관 도록을 파고 들며 금등지사의 위치를 고민하다가 정박사가 얘기 해 준 금등지사의 최초 위치를 떠올려
배움이 향하는 곳, 나라의 시작인 그 곳이 바로 종묘임을 깨달아 그 곳으로 향하게 되는데,
이를 알게 된 하인수는 이를 막으려 관군을 동원하여 윤희를 잡고자 나선다.
그를 발견한 여림은 선준과 재신에게 알리고, 재신이 시간을 끄는 사이 선준이 윤희를 구하라 하며
재신은 홍벽서가 되어 관군의 움직임을 막는 데 성공하고 선준은 종묘에서 윤희를 만나는데
관군과 싸우다 칼을 놓친 홍벽서 재신은 관군이 휘두르는 칼에 그만 베이고 만다. (악... 안 돼... ㅜ.ㅠ)
18화를 보면서, 대의명분과 사리사욕은 과연 구분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경계는 도대체 어디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되었다. 대의명분을 내세우는 것은 오로지 온 마음을 다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대의명분만을 지키고자 함인가, 그렇지 않으면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는 눈속임 혹은 자기 기만인가.
비교의 극명함을 위해 극단적인 단어 선택을 하였지만, 아무리 따사로운 정이나 의리 혹은 불가피한 상황이라 포장해도
사적인 의도나 욕심이 있다고 한다면 광범위한 의미에서는 사리사욕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보여진다.
평소에도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으나, 이번 회를 보면서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있을 수 밖에 없고
그게 장소가 어디든 시대가 언제든 상관 없이 끊임 없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임에 틀림 없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바로 대의명분을 내세운 사리사욕 채우기라는 현상 말이다.
좌상이 금등지사를 없앤 것은 종묘와 사직을 혈육의 정이나 천륜보다 우선시 했다는 대의명분에 흔들림이 없다 하나
그 이면에는 노론의 세력 강화와 그 노론을 아우르는 자신의 가문인 진성 이문의 번성을 위한 사리사욕에 잇닿아 있고,
김승헌 박사가 차별과 불평등이 없는 새로운 조선에 대한 열망을 품은 대의명분의 한 편에는
재주 많고 똑똑한 딸 자식이 자유롭게 능력을 펼치게 하고픈 부성의 사리사욕의 연장선이 있으며,
새로운 조선을 열고자 도읍 천도를 하려는 의지 표방에 그 열쇠로서 금등지사를 찾아야 한다는 정조의 대의명분은
노론 세력을 억누르려는, 억울하게 명을 달리한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한 갚음의 사리사욕도 포함하고 있음이다.
여림은 비교적 솔직하게도, 금상이 내세우는 신조선에 대한 뜬구름 잡는 거창한 대의명분 보다도
불의하게 희생된 형과 친우의 부친의 한을 풀고 그럼으로써 노론 세력을 제압하고자 하는 걸오를 믿는다며,
금등지사를 찾으면 그 결과론으로 그 새로운 조선에 다가가지 않겠느냐는 귀납적 논리로 접근한다.
윤희도, 아버지의 뜻과 아버지가 어떤 분이었는지 알고자 하는 갈망으로 금등지사를 찾으며,
선준 또한, 대동세상의 이상 보다 사랑하는 여인과 친애하는 사형에 대한 죄갚음의 심정으로 더욱 열심히 임하고 있다.
그들에게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는 정약용 박사 또한 존경하는 스승님의 여식과 사랑하는 제자들이
부당하지 않은 대접을 받길 바라며 그들과 더불어 본인 역시 고리타분한 사상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뜻을 펴고자 한다.
순수하게 사리사욕에 충실한 정직한 인물들은 병판과 그 아들인 하인수, 그 딸인 하효은, 하씨 집안 사람들 정도일까.
노골적으로 욕심을 드러내어 속이 다 들여다 보이는 게 비난 받아 마땅하면서도 어쩔 땐 동정심마저 느끼게 한다.
아, 한 사람 더, 대사성 영감이 있다. 이 냥반은 그래도 본인 욕심 때문에 타인을 해꼬지 하지는 않으니 귀여운 편이다.
허나 위에 언급했듯이, 드라마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전 인류 보편적인 현상이다.
근자에 보자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색출한다는 세계 평화의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이라크가 보유한 석유자원의 확보라는 사리사욕이 도사리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며,
세계 비핵화 협상도 사실은 기존의 핵 보유국들의 입지를 더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속설이랄지,
과거 유럽의 십자군 전쟁이라든지, 미국 남북 전쟁이라든지, 세계 대전이라든지, 베트남 전쟁이라든지, 한국전쟁도,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찬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모두 대의명분의 기치를 들고 있지만, 동전을 뒤집으면
세력 지배권과 감정적 격화와 기득권과 사상 및 잇권 등으로 점철되고 얼룩진 욕망과 음모가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
조선시대에 당론과 당색으로 서로 피터지게 쥐어 뜯으며 서로의 의견을 좁히지 않는 것과
현재의 대한민국이 여당과 야당 간에 멱살잡이를 하고 난동을 부리며 서로를 비난하는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은
그 진실을 보다 가깝게 현실적으로 느끼게 해 주는 단적인 예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금등지사 찾기라는 동일한 목표를 두고, 그와 관련된 서로의 속 뜻은 조금씩 다르지만 함께 협력해 나가며,
그러다가 권력의 거대함과 그 앞에서의 무력함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지를 꺾지 않는 젊은이들의 패기는
설령 그것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무모함이라 할지라도 그 뜻을 알리는데 큰 의의를 두고 있는 것이리라.
드라마 한 편으로 전 인류와 역사에 대한 고찰이라니, 꽃유생들의 사랑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시청자로 하여금
이런 생각까지 하게 만든 제작진의 의도와 연출과 수고로움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아무리 드라마가 인기가 높고 호응이 커도,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세상은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수천억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세상에 나사 하나 박는다고 방향이 바뀌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막대한 양의 강물과 같은 시대의 흐름에 자그마한 물줄기는 그 안에 빨려들어가 자취도 흔적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쓴이가 다른 글에서도 썼듯이, 갑작스러운 큰 변화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이라도 조금씩 천천히,
이미 쌓아져 온 세월을 뒤집으려기 보다는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서서히 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방향이 0.1도만 틀어져도 길이가 길어지면 그 끝의 간격은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나듯이 말이다.
유아인 군의 인터뷰를 빌자면, 홍벽서처럼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으로 젊음은 할 일을 하는 것이고,
그 대안을 내는 것은 그 문제를 받아들인 결정 권한이 있는 자들의 몫인 것이며
올바른 대안이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를 멈추지 않아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재신의 아버지인 대사헌은 튀지 말라고 했다. 선준의 아버지인 좌상은 멸문지화를 면하려면 금등지사를 찾지 말라 했다.
윤희의 어머니는 딸이 모르도록 진실을 덮었다. 이 세상 거의 모든 기성세대를, 모든 부모를 대변한다 할 수 있겠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목숨을 건 사지로 내몰면서까지 자식더러 정의를 지키라 하겠는가.
글쓴이도 숱하게 듣는 말이다.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괜히 끼어들어 피해 보지 말고 조용히 있어라....
나날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여러 현안들...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세들... 환경들...
쉽게 답이 나오지 않고 팽팽하게 맞선 의견들 사이에 시들어가는 서민들과 피해자들...
누구를 위한 정책이고 무엇을 위한 대안이며 또한 어떤 결과를 위한 반대이고 논쟁이고 협상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 어지럽고 명쾌하지 않은 답답한 현실에, 우리나라에서는 영웅이 나오기 힘들다는 시쳇말이 생각나 쓴 웃음을 짓는다.
내가 바꾸지 않으면 아무도 바꿔주지 않는다고, 글쓴이가 오래도록 빠져 있는 음악인이 말 했다.
성균관 스캔들, 이 드라마도 그렇게 같은 말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세상에 더 이상 영웅은 없지만 각자가 작은 영웅들이 되어 조그만 것이라도 바꾸려 실천하는 것.
세상의 방향을 0.1도 틀게 하는 노력의 시작이 아닐까.
대의명분과 사리사욕은 다른 옷을 입었지만 속은 어쩌면 같은, 아니면 사실은 하나인데 이름만 달리한 걸지도 모르는,
전혀 다르게 보이지만 종국에는 시작점이 같은 두 얼굴의 가치관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바람직한 대의명분이라면, 그것을 이룸으로써 사리사욕이 마음껏 채워져도 전혀 비난받지 않을 수 있는 세상,
먼 훗날에 그런 날이 올 수 있기를, 드라마 한 편에 온갖 생각을 하게 된 한 사람이, 중언부언 두서 없는 글을 적으며,
또 재신의 무사함을 19화에서 확인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렇게 또 하나의 소망을 품는다.
이상 이스론의 두런두런 스물다섯번째 마침. 2010. 10. 28.